‘아무거나’ 고르라고 하면 사람은 7을 고른다
1부터 10 중에 아무 숫자나 고르라는 질문은 여러 나라에서 수없이 반복된 설문입니다. 결과는 늘 비슷합니다. 7이 압도적인 1위입니다. 열 개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므로 균등하다면 각 숫자가 10%씩 나와야 하는데, 7은 그 세 배 가까운 표를 가져갑니다.
왜 하필 7일까요. 우리가 머릿속에서 실제로 하는 일은 ‘고르기’가 아니라 ‘지우기’이기 때문입니다. 1과 10은 양 끝이라 아무렇게나 고른 티가 나지 않습니다. 5는 정중앙이라 역시 의도가 보입니다. 짝수는 어딘가 규칙적으로 느껴져서 제외됩니다. 남은 3, 7, 9 중에서 3은 너무 작아 보이고 9는 10에 붙어 있습니다. 그렇게 소거하고 나면 7만 남습니다.
즉 우리는 무작위한 숫자를 고른 것이 아니라, 무작위해 보이지 않는 숫자를 하나씩 지운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지우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답에 도착합니다. 무작위해 보이려는 노력이 결과를 가장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셈입니다.
지어낸 동전 던지기는 반드시 들킨다
통계학 수업에서 자주 쓰이는 유명한 과제가 있습니다.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에는 동전을 실제로 100번 던져 앞뒤를 그대로 적어 오라고 하고, 다른 쪽에는 던지지 말고 100개를 머리로 지어내 오라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 교수는 제출된 기록을 훑어보고 어느 쪽이 진짜인지 골라냅니다. 그리고 거의 다 맞힙니다.
비결은 연속 구간의 길이입니다. 동전을 100번 던지면 같은 면이 6번쯤 내리 나오는 구간이 어딘가에 하나는 생기는 것이 정상입니다. 최장 연속 길이의 기댓값이 대략 로그 스케일로 커지기 때문에, 100번이면 6 근처가 됩니다. 그런데 지어낸 기록에서는 이런 구간을 찾기 어렵습니다. 앞면을 네 번쯤 적고 나면 손이 불안해져서 저절로 뒷면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무작위는 고르게 흩어진 상태가 아니다. 진짜 무작위는 뭉치고, 몰리고, 한참 이어진다.
심리학이 정리한 인간 난수의 세 가지 습관
1972년 심리학자 빌렘 바게나르는 그때까지 발표된 무작위 생성 실험들을 한데 모아 정리했습니다. 과제의 형태도 참가자의 언어권도 제각각이었지만, 같은 편향이 반복해서 나타났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 반복 회피 — 방금 나온 것을 다시 내지 않습니다. 앞면 다음에는 뒷면을 적고 싶어지고, 3을 부른 다음에 또 3을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 조기 균형 — 전체 개수를 억지로 맞추려 합니다. 큰 수의 법칙은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해야 나타나는 현상인데 우리는 그것을 열 번 안에서 지키려 듭니다.
- 패턴 배제 — 1-2-3이나 5-5-5처럼 의미를 읽을 수 있는 배열은 무작위가 아니라고 판단해 지워 버립니다. 하지만 그런 배열도 다른 어떤 배열과 정확히 같은 확률로 나옵니다.
세 습관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무작위를 만드는 대신, 무작위처럼 보이는지를 스스로 검열합니다. 아무도 채점하지 않는데도 그렇습니다.
가위바위보에 이기는 법
이 편향이 가장 실용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가위바위보입니다. 2014년 중국 저장대학교 연구진은 학생 360명을 짝지어 한 쌍당 300판씩 두게 하고 모든 수를 기록했습니다. 사람이 정말로 셋 중 하나를 무작위로 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체 빈도만 보면 결과는 이론과 거의 같았습니다. 바위·가위·보가 각각 3분의 1씩 나왔습니다. 하지만 직전 판의 결과를 조건으로 걸자 뚜렷한 규칙이 드러났습니다. 이긴 사람은 같은 것을 한 번 더 냅니다. 진 사람은 방금 자기가 낸 것을 이기는 쪽으로 한 단계 옮겨 갑니다. 바위를 내서 졌으면 다음에는 보를 내는 식입니다.
| 상대의 직전 판 | 상대의 다음 수 (예상) | 내가 낼 것 |
|---|---|---|
| 바위로 이겼다 | 바위 — 그대로 유지 | 보 |
| 보로 이겼다 | 보 — 그대로 유지 | 가위 |
| 가위로 이겼다 | 가위 — 그대로 유지 | 바위 |
| 바위로 졌다 | 보 — 한 단계 위로 | 가위 |
| 보로 졌다 | 가위 — 한 단계 위로 | 바위 |
| 가위로 졌다 | 바위 — 한 단계 위로 | 보 |
비긴 판 뒤에는 예측력이 크게 떨어지므로, 이 표는 승패가 갈린 다음 판에만 쓰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상대가 자기 습관을 자각하는 순간 효과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 요령은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써먹기보다 결정적인 한 판에 아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애플은 셔플을 일부러 덜 무작위하게 만들었다
초기 아이팟의 셔플 재생은 말 그대로 무작위였습니다. 그러자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같은 가수의 노래가 세 곡 연달아 나오거나 방금 들은 곡이 얼마 뒤 또 나오면, 사용자들은 셔플 기능이 고장 났다고 확신했습니다.
물론 고장이 아니었습니다. 500곡 중 한 가수의 곡이 30곡이라면 그 곡들이 어딘가에서 몰려 나오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앞의 동전 던지기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입니다. 애플은 2005년 아이튠즈에 스마트 셔플을 도입해, 같은 가수와 앨범의 곡이 연달아 나올 가능성을 사용자가 직접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로 널리 인용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셔플을 덜 무작위하게 만들었습니다. 더 무작위처럼 느껴지도록.— 스티브 잡스
스포티파이도 2014년에 같은 결론에 도달해 셔플 알고리즘을 바꿨습니다. 완전 무작위로 순서를 섞는 대신, 같은 가수의 곡을 재생 목록 전체에 고르게 흩뿌리는 방식입니다. 수학적으로는 분명히 덜 무작위해졌지만 불만은 줄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입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작위가 아니라 무작위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둘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야말로, 인간이 무작위를 다루지 못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내가 아무나 지목할게’가 위험한 이유
여기까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끝나도 좋습니다. 문제는 회식 자리에서 벌칙 대상을 정하거나, 발표 순서를 정하거나, 청소 당번을 뽑을 때입니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결정에서 사람이 직접 손가락을 들면 두 종류의 편향이 한꺼번에 겹칩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본 무작위 편향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편향입니다. 방금 눈이 마주친 사람, 이름이 먼저 떠오른 사람,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쪽으로 손이 갑니다. 심리학에서 가용성 휴리스틱이라 부르는 작동 방식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본인은 정말로 아무나 골랐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가장 떠올리기 쉬운 사람을 고른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결과가 아니라 해명입니다. 지목된 사람은 왜 하필 나냐고 묻고, 지목한 사람은 그냥 아무나 고른 것이라고 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무작위의 진짜 가치는 결과가 고르게 나온다는 데 있지 않고, 아무도 결과를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습니다.
무작위는 내 머리가 아니라 바깥에 맡긴다
오래된 사회들이 중요한 결정을 주사위와 제비와 산가지에 맡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도구가 정하면 원망할 대상이 사라집니다. 결정을 사람의 손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핵심이고, 그 도구가 얼마나 정교한지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핀볼 룰렛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공이 떨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화면 위의 누구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핀 하나를 스치는 각도의 미세한 차이가 다음 충돌 지점을 바꾸고, 그 충돌이 다시 그다음을 바꿉니다. 만든 사람조차 어느 공이 먼저 도착할지 미리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 과정을 모두가 함께 지켜본다는 점입니다. 결과만 통보받는 추첨과, 공이 굴러 내려가는 20초를 다 같이 본 추첨은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릅니다. 납득은 확률이 아니라 목격에서 나옵니다.
사람은 무작위를 만드는 데 형편없이 서툽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함이 아닙니다. 흩어진 사건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살아남은 이유이고, 무작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 능력의 이면일 뿐입니다. 다만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선택지가 하나 생깁니다. 정말로 무작위가 필요한 순간에는, 내 머리를 믿는 대신 바깥에 맡기는 것입니다.